바로가기 go !! 바로가기 go !!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1896년 8월 9일, 독일의 기술자인 오토 릴리엔탈은 자신이 만든 글라이더를 타고 네 번째 시험 비행을 시도하다가 추락해 다음 날 사망했다. 48년 생애 내내 하늘을 나는 꿈을 꿨던 그는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세계 최초로 글라이더를 만들어 꿈을 실현했으나, 한 단계 더 도약하려다 실패하고 소중한 생명을 대가로 바쳤다.
그러나 그의 실패는 라이트 형제에게 큰 자극이 됐고, 인류는 마침내 동력 비행기를 만들어서 하늘을 날게 됐다. 오토 릴게임꽁머니 릴리엔탈의 실패는 위대한 도전에 따른 위대한 실패였고, 오늘날 중력을 이겨내고 지구 반대편으로 마음껏 비행하게 된 인류는 오토 릴리엔탈을 실패자로 여기지 않는다.
인류 문명사는 도전과 실패의 역사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켜 온 역사는 곧 실패의 역사다. 인류가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나아 바다이야기고래출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실패했다는 건 곧 도전했다는 뜻이다. 굳이 거창한 발명이나 대단한 진보를 예로 들 필요 없이, 세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먹거리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밥상도 우리 조상의 끝없는 도전과 실패의 산물이다. 독성이 강한 버섯류, 고사리, 두릅에 복어까지 서구인들이 보기에 기이한 온갖 식재료가 한국인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실패가 체리마스터모바일 있었겠는가. 그런 실패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밥상은 얼마나 단조로웠겠는가.
오토 릴리엔탈과 라이트 형제가 실현한 하늘을 나는 꿈에 이어 중력을 거스르려는 인류의 두 번째 꿈인 우주 탐사도 실패를 쌓아서 실현해 왔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을 펼치던 1950~90년대에 양국은 각각 200번에 가까운 실패를 겪었고, 그 과정에 많은 아 황금성게임랜드 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실패고 희생이다. 미국은 1967년 아폴로 1호 발사를 준비하다가 세 명의 우주인을 잃었다. NASA는 충격에 휩싸였고 달 탐사 프로젝트는 중단 압력에 시달렸지만,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고 개선해 1969년에 마침내 아폴로 11호로 인류를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달 위에 남은 인간의 첫 발자국은 '실패를 두 야마토게임 려워하지 않은 자들'의 발자국이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11월 27일 새벽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누리호 성공도 실패의 두려움 이겨낸 쾌거
얼마 전 4차 발사에 성공한 대한민국 독자 개발 우주발사체 누리호도 크고 작은 무수한 실패의 산물이다. 1993년 한국형 과학관측로켓 KSR 1호 발사 성공 이후 과감하게 도전한 우주발사체 나로호 개발은 2009년과 2010년 두 번의 발사 실패와 무수한 발사 연기를 겪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원 전체가 연봉이 삭감되고 자칫하면 프로젝트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모진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발사에 성공해 그것이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 개발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우주기술의 첫 발자국 역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것이었다.
실패는 창의성의 뿌리고, 과학기술의 동반자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1만 번의 실패를 어떻게 견뎠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전구가 작동하지 않는 1만 가지 방법을 알아냈다"라고 대답했다. 막막한 대양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이들은 먼저 떠난 이들이 시행착오로 알려준 위험을 피해서 길을 연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지도라는 뜻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실패는 낙오' 인식 팽배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는 '실패는 곧 낙오'라는 인식이 깊게 스며들었다. 사회 전체가 실패를 두려워해 신세계를 열어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보다는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길을 따라가려는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불확실함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걸 어리석게 여긴다. 젊은 세대조차 꿈이나 이상보다는 검증된 진로를 선택해 의대나 로스쿨 진학에 매진한다. 그래서 개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능케 한 과감한 도전과 실패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실을 보면 이런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장기적 안목과 투자가 필요한 연구는 시도하기 어렵고, 시도하더라도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에서 보듯이 줄곧 힘겹게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니 단기적 성과로 입증이 가능한 시도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중에 책임지지 않을 근거를 만들려고 논문 수나 특허 건수 같은 양적 척도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관료적 분위기는 긴 호흡의 창의적 연구를 고사시킨다. 기초과학이나 원천기술 분야의 연구가 실패를 두려워하면 어떤 모양새가 되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11월 7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과학기술 연구자에게 실패할 자유를 주자
한국의 과학기술 R&D 과제 성공률이 90%를 훌쩍 넘는다는 말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실패하지 않고 성과 내기 좋은 단기 과제 위주로 지원된다는 비판이 줄곧 뒤따랐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연구자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주겠다고 했는데, R&D 성공률을 계산하는 통계가 없으니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과학계를 비판하는 거라는 반론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비판의 근거가 정확해야 한다는 취지는 귀 기울일 만하지만, 2019년에도 KBS에 "R&D 성공률 99.5%, 사업화는 20%"라는 기사가 보도됐듯 이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였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과학기술계를 위축시켜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든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학기술계든 젊은 세대든 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걸 탓하기 전에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회 분위기를 되돌아보자.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에서 무슨 도전을 시도하란 말인가.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를 넘어서 실패를 권장하는 사회를 만들자. 혁신은 도전과 실패를 먹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