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주인공을 맡은 배우 유준상. 컴퍼니 연작 제공


역사에는 전면과 후면이 있다. 군중의 환호를 한몸에 받으며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역사의 순간을 지탱하는 이들도 있다. 연말 무대에 나란히 오른 두편의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과 ‘에비타’는 역사의 스테이지와 백스테이지에 각각 선 인간을 응시하며, 우리가 역사 속 누구의 얼굴을 기억해왔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릴게임야마토 (내년 2월8일까지)은 인류 최초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11호의 사령선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가 주인공이다. 달의 뒤편에서 홀로 머물러야 했던 그의 시간을 1인극 형식으로 풀어낸다. 작품은 임종을 앞둔 콜린스가 삶과 죽음의 경계, 이른바 ‘그레이존’에 머무른 채 자신의 달과 사랑을 되돌아보는 순간을 현재 시점으로 삼는다. 세계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바다신2릴게임 의 달 착륙을 숨죽여 지켜보던 바로 그때,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캄캄한 궤도에서 통신이 끊기는 구간을 홀로 통과해야 했던 인간의 고독과 책임, 그리고 생의 끝에서 되감기는 기억들이 교차하며 한 사람의 궤적을 그려낸다.



창작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공연 장면. 컴퍼니 연작 바다이야기디시 제공


‘비하인드 더 문’은 충무아트센터 개관 20주년 기념작이자 ‘창작 뮤지컬 어워드 넥스트’ 우승작으로 개발된 초연 작품이다. 김지호 연출, 김한솔 작가, 강소연 작곡가 등 창작진은 90분 남짓의 러닝타임을 온전히 콜린스의 내면에 집중하는 데 쓴다. 무대 후면을 가득 채운 엘이디(LED) 영상 릴게임예시 과 달의 뒤편을 형상화한 입체적인 세트, 사소한 몸짓까지 따라붙는 조명은 한 인간의 기억과 상념, 두려움이 우주 공간처럼 떠다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김한솔 작가는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나 “달 착륙 50주년 행사에서 마이클 콜린스가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인물을 처음 마주했다”며 “현실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을 무대에서만큼은 릴게임황금성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고 창작 동기를 밝혔다.



창작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주인공을 맡은 배우 유준상. 컴퍼니 연작 제공


유준상·정문성·고훈정·고상호 4명의 배우가 번갈아 무대에 올라 각기 다른 결의 ‘단 하나의 마이클’을 완성한다. 유준상은 “오랫동안 달과 별에 매료돼왔다. 소설 집필을 위해 천문학자와 과학자들을 취재하던 도중 이 작품을 만났다”며 “80살까지 붙들고 가고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1인극이라는 선택은 거대한 사건의 스펙터클을 펼쳐 보이기보다, 그 이면에서 침묵을 견뎌야 했던 한 사람의 숨을 따라가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현실에서조차 잘 보이지 않았던 인물을 극 안에서만은 가장 선명하게 보이게 하려는 시도다. ‘비하인드 더 문’이 길어 올리는 것은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그 업적을 망치지 않기 위해 실패의 공포를 끌어안고 버텨야 했던 인간의 긴 고독, 그리고 그 고독을 지탱해준 사랑이다.



뮤지컬 ‘에비타’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에비타’(내년 1월11일까지)는 정반대 방향에서 실화를 다룬다.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의 삶을 따라가며, 한 여인이 역사와 대중의 전면으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성스럽고도 위험한 신화로 빚어낸다.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라디오 스타, 군부 권력과 결합한 정치 스타, 그리고 군중의 숭배를 받는 ‘국민의 성녀’에 이르기까지, 무대 위 에비타는 늘 조명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거장 콤비 팀 라이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으로, 1996년 마돈나 주연의 영화로 제작될 만큼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에비타’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이번 한국 프로덕션은 2006년 초연, 2011년 재연 이후 14년 만에 돌아온 무대로, 김소현·김소향·유리아가 에바 페론(에비타) 역을 맡았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성스루 형식 위에, 내레이터 체(마이클 리?한지상?민우혁·김성식)의 시선이 얹힌다. 체는 에바를 찬양하는 합창 속으로 파고들어 냉소를 던지고, 군중의 환호 뒤에 숨은 계산과 권력의 역학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에비타’는 수십명의 앙상블과 대규모 군무, 화려한 의상과 장면 전환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쇼뮤지컬의 형식을 취한다. 무대에서 쏟아지는 합창과 화려한 탱고, 대형 세트와 풀 편성에 가까운 밴드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 속에서, 에바는 국가와 시대를 상징하는 ‘얼굴’로 부각된다. 관객은 ‘돈트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로 대표되는 장중한 선율에 취하는 동시에, 집단의 열광과 이미지 정치의 속내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이 연상된다는 말도 나오는데, 제작사 쪽은 “정치적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뮤지컬 ‘에비타’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에비타’가 ‘어떻게 기억되어왔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비하인드 더 문’은 ‘무엇을 새로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들 작품은 우리가 역사를 소비해온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역사의 어느 자리에 서있는 사람을, 우리는 더 오래 기억할 것인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