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나는 퀭하고, 병약하고,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기 위해서 매일 눈을 충혈시키거나 싸구려 파우더를 얼굴에 펴 바른 채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견뎌내기 힘든 공포의 시작’이라고 릴케가 말했던가. 그래서인지 그 시절 찍힌 사진 속 내 모습은 깊은 원한을 지닌 소녀 귀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추구한 그 ‘호러 뷰티’가 완벽한 화장술을 갖기 위한 시행착오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프거나 다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중학생의 화장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이야말로 화장이란 행위의 본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는 현재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메이크업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CJ E&M ‘겟잇뷰티’ 갈무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8/sisain/20251108084850827lwwc.png" data-org-width="1280" dmcf-mid ="0rq5N4YCMi"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8/sisain/20251108084850827lwwc.png" width="658">

CJ E&M 온스타일의 <겟잇뷰티>는 현재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메이크업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CJ E&M ‘겟잇뷰티’ 갈무리



그러나 여성들에게 화장을 ‘예의’의 문제로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다’는 화장에 대한 청소년기의 욕망은, 성 인이 되며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의무와 충돌한다. 억압에 저항하는 수단이 곧 억압 자체가 되는 이 혼란한 과정에서, 미용산업과 미디어는 막 사회에 발을 디딘 화장에 서툰 여성들을 늘 한발 빠르게 타기팅해왔다. 2000년대 중후반 저가형 코스메틱 시장의 폭발적 확장에 힘입어, 현재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메이크업 콘텐츠로 평가받는 〈겟잇뷰티〉(200 6, 온스타일)는 메이크업 팁을 전수하는 방송이자 동시에 그 메이크업에 사용된 제품을 광고하는 성공적인 세일즈 콘텐츠였다. 방송은 주로 ‘도자기처럼 티끌 하나 없는 피부 표현’과 더불어,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색조 화장’을 젊은 여성들에게 가르치며, 오늘날 ‘K뷰티’라 불리는 미적 기준을 대중에게 내면화시키고 수많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 권위를 부여했다.

〈흑백 요리사〉 구성 적극적으로 모방

〈겟잇뷰티〉에서 시작된 메이크업 콘텐츠는 뉴미디어라는 플랫폼의 변화에도 그 세력을 굳건히 유지했다. 유튜브와 틱톡의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들은 기존 뷰티 콘텐츠가 가진 ‘따라 하기, 따라 사기’에서 더 나아가 제품에 대한 솔직한 비교 분석, ‘비포/애프터’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삼아 메이크업이 가진 놀이적 측면을 강화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쿠팡플레이가 새롭게 선보이는 서바이벌 〈저스트 메이크업〉은 하나의 장르가 된 뷰티 콘텐츠의 지난 20여 년 세월을 아우르고, 메이크업 산업의 현재를 파악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저스트 메이크업〉은, 요리사의 권위를 확인하고 요식산업에 대한 인식을 높인 〈흑백 요리사〉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심사위원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참가자들을 심사하고 의견일치로 당락을 결정하는 1라운드에서, 방송은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섭외한 참가자들의 면면을 정성스럽게 소개한다. 30년 이상 경력의 ‘청담동’ 문화를 만든 1세대 원장님, 케이팝 아이돌과의 협업으로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특수분장 전문가, 유명인 커버 메이크업을 통해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와, ‘방구석 화장’ ‘출근길 야외 화장’ 콘텐츠로 인기를 얻은 틱토커, 이태원에서 드래그 쇼를 기획하고 있는 드래그?아티스트···. 방송은 각자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화장’해온 참가자들을 조명하며 화장이란 기술이 가진 예술성과 노동성을 한껏 부각한다.


2라운드에서 펼쳐지는 1대 1 데스매치는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오직 ‘손 기술’만을 평가하는 미션이다. 이는 메이크업을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 감정적 응대가 필수인 ‘꾸밈 노동’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순수한 예술성만을 추구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스트 메이크업〉 출연자의 대부분은 고객(구독자)의 내면을 읽고, 비위를 맞추며, 정서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감정노동의 베테랑이다. 그래서 이 극단적인 심사 기준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화장이란 단순한 시각예술이 아니라 타인에게 감응해야 하는 노동집약적 예술임을 증명한다.


이 공개됐다. 방송은 30년 경력의 ‘원장님’부터 뷰티 유튜버까지 참가자 면면을 정성스럽게 소개한다. ⓒ쿠팡플레이 갈무리"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8/sisain/20251108084851132npta.png" data-org-width="1280" dmcf-mid="p1jR5m6beJ"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8/sisain/20251108084851132npta.png" width="658">

10월3일 쿠팡플레이 서바이벌 예능 <저스트 메이크업>이 공개됐다. 방송은 30년 경력의 ‘원장님’부터 뷰티 유튜버까지 참가자 면면을 정성스럽게 소개한다. ⓒ쿠팡플레이 <저스트 메이크업> 갈무리



〈저스트 메이크업〉은 화장이란 오직(just) 시각적인 것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성형외과 로비의 ‘턱뼈탑’(성형수술을 한 환자들의 턱뼈로 만든 불법 조형물)과 화장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는 ‘탈코르셋’ 운동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화장이란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위한 수행이자, 나의 생산성을 증명하기 위한 의무이며, 규범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없고, 외모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화장을 ‘규범’이 아닌 ‘관계’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행위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남의 외모를 함부로 지적하는 것을 마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저항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화장하지 않은 여성에게 예의를 따지고, 과하게 화장한 여성을 힐난하며, 남성이 화장하는 것을 지적하는 그들의 행위는 모두 사회의 보수적 규범을 강화하는 일에 불과하다. 타인의 외모에 대한 수용 기준을 넓게 확장하고 그것이 차별이나 소외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경계할 때, 또 화장이라는 자기 연출이 권력에 의해 강요되지 않으며 ‘지울 수 있는 자유’ 또한 확보될 때,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때’를 만들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외모에 대한 강박을 화장이라는 즐거운 놀이로 변환할 수 있을 것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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