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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찬반 논평이 쏟아진다. 에스엔에스(SNS)에선 ‘백일장’이 펼쳐진다고들 한다. 이 영화가 왜 놀라운지 관점을 하나 더 보탤 만하다. ‘사라지는 것들의 존엄사’.
있는 줄도 모르는 존재의, 사라지든 말든 냉담한 대중 앞에서 거행되는 ‘존엄사’의 현장은 무참할 수밖에 없다. 존재했을 때처럼, 사라져야 할 때도 ‘발악’하고 ‘발버둥’을 쳐야 그 존재는 겨우 드러난다. 영화 속 제지 기술자가 은유하여 압박시키는올쌈바
윤리가 되겠다. 제지 공장의 25년 기술 경력자 만수(이병헌)가 해고된 뒤 재취업하기 위해 실력 있는 또 다른 기술자들, 즉 잠재적 경쟁자를 하나씩 죽여 나가지만, 그 기술자들은 또 다른 만수에 다름 아니다. 만수가 만수를 죽이는 격이니 ‘존엄사’다. 아내를 사랑하는 만수가 범모(이성민)이고, 딸에게 신발을 사주려는 만수의 마음이 시조(차승원)의 마음이다KODEX구리선물(H) 주식
. 수완이 좋긴 해도 단 한번 ‘펄프맨’으로 등극하지 못한 데에 대한 선출(박희순)의 회한을 세상 모두는 코웃음 쳐도 만수는 안다. 자본과 이익에 존재감이 등치되는 가운데, 저 ‘바닥 산업’에 헌신한 범모의 (극 중 설정하길) 들을 수도 없는 아우성이 처절하다 못해 숭고해지는 까닭이다. 그런 사양 산업이 종이뿐인가. 당장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스마트폰으로 쪼5일선
그라든 극장 영화는 어떤가. 박찬욱 감독은 지난달 베네치아 영화제 현지 인터뷰에서 “자동화된 기계가 사람이 하는 업무들을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처연한 존엄사의 현장을 목도시킴으로, 사라지는 것들은 비로소 겨우 존엄해진다.
오직 그녀의 것 l 김혜진 지음주식세력
, 문학동네, 1만6800원
때마침 영화에 호응하는 소설 한권이 출간되었으니, 그것은 영화의 원작인 미국식 풍자 스릴러 ‘액스’(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가 아니라, 여성·소외 노동에 천착해 온 김혜진 작가의 ‘오직 그녀의 것’이다. 아무렴 이 소설이 흥행하기란 쉽지 않겠다. 인물도, 구성도 어지간온라인배경
히 담박하다. 당대 흔한 장치로 회귀·빙의·환생을 죄다 갈아 넣는대도 소설은 크게 반전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데 이유가 있지 않다. 기교 없는, 작중 인물의 삶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닮은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 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주인공 ‘그녀’의 이름은 홍석주다. 스물네살 된 90년대 초 첫 직장으로 출판사에 발을 들인 뒤 쉰여덟 되도록 출판인으로서 제 삶을 갈음한 여성이다. 소도시에 있는 대학 사학과에 입학하고서 석주는 느꼈다. 부모의 종용으로 교사가 되고자 자신이 선택한 전공 학문이 “죽음과 닮았다”고. 경영학 등과 달리 “생동한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고. 하물며 그는 문학을 동경했다. 그런 석주가 출판계로 유입되기까지의 경로로부터 끝내 벗어나지 않(못하)는, “현실이 아니라 허구를 탐독하고 완성하는 데” 붙박인 한 생애를 그저 세밀히 좇는 것이 작가 김혜진의 처사이자 작법이다.
석주는 종합 출판사에 교열자로 입사해 3년차에 편집부로 옮기지만 몇년 뒤 경영난으로 해고된다. 석주는 만수가 아니라서, 어쩌면 실직 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20대 후반이 삶의 경로를 바꿀 절호의 기회, 혹여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신생 출판사가 늘고 밀리언 셀러가 왕왕 터지기도 했으나 도매상들의 사업 확장, 사재기, 과대광고, 마구잡이 무단인용·전재로 출판 시장은 이미 안으로도 곪던 때다. 하지만 실직 전 편집했던 책 한권이 석주에게 배달되고… 판권면에 박힌 제 이름이 눈에 박히고… “멀리 치워두었던 마음, 어쩔 수 없다고 단념했던 마음”, 말하자면 죽음과 닮은 마음은, 생동하는 마음으로 역류한다.
석주는 갓 설립된 독립 출판사 산티아고북스에 입사해 다시금 책이라는 ‘소우주’를 유영해 간다. 소심한 성격을 내쳐 외부 ‘편집자 소모임’에도 나가며 한때 교열자는 편집자, 편집자는 기획 편집자로 ‘적분’되어 간다. 디램과 에이치비엠(HBM, 디램을 수직으로 쌓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을 구분하기 바쁜 이들은 물을 만하다. 뭔 차이냐고, 그냥 출판팀 아니냐고. “원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교열의 영역이라면 “(자료 너머) 필자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편집의 영역에선 요구되고,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 또한 다른 것이되, 이 모두는 ‘마음’을 빼앗긴 ‘마음’이 제 ‘마음’을 다함으로 가능하다. 실제 소설에서 가장 흔한 낱말이 바로 “마음”이거니와, 실체로서의 출판, 작가와 마주하여 다만 방망이를 다듬는 것과 다름없는 이 공정과 저 공정에 전력하여 입힌 질감이 김 작가의 마음이다.
소설에 ‘사건’이 없진 않다. 출판관이 다른 동료와, 책 납품가를 후려치려는 거점 서점과의 갈등, 30만권 이상을 삼켜버린 총판의 물류창고 화재…. 정점은 ‘출판의 자유’에서 비롯한다. 체제 비판적 작가가 신문 연재소설로 종교단체 등의 비난을 받고 음란문서제조죄 등으로 구속된다. 1심 유죄 뒤 2심 무죄를 받자, 일부 단체는 불매 시위에 나선다. 석주가 공들여 준비해 온 신간 예정 소설의 저자에게 닥친 일이다.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2심을 파기 환송한다. 사태 대응에 여념 없던 석주는 약속했던 결혼까지 파경을 맞는다. 이후 석주가 편집해 출간한 작가의 소설은 문학상을 받고 해외에서 인기를 끌며 산티아고북스의 견고한 자산이 되었으나 석주는 나중 되뇌게 된다. 어떤 책도 만들기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한권의 책을 만드는 동안” “놓치고 잃은 것”은 많다고.
하지만 석주는 연민도 영광도 구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알까 싶은” 활자의 결함이 “조마조마하고 필사적인 마음”의 ‘사건’이 되고 마는 세계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어쩔 수가 없다.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나요?”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이에 대한 투명하고 과장 없는 오마주로, 이 사회 출판문화의 밑돌이 된 ‘석주들’은, 소설 끝에서야, 아주 조금 존엄해진다. 그것이 과장이라면 유일한 과장일 터, ‘출판·표현의 자유의 위기’가 아니라 ‘출판과 표현의 위기’를 감당 중인 21세기 첫 25년의 ‘석주들’에게 -최근 논란이 된-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의 특별공로상이 주어졌다면 -영화 말미에서처럼- 낡고 더딘 것이 어떻게 ‘클래식’이 되는지를 독자들 또한 좀 더 알 만했을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